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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2000. 떠있는 해 조성모와 떠오르는 해 지오디

2000년 주류 대중음악계에서 가장 돋보인 가수는 지오디였다. 1999년에 발표한 1집의 ‘어머님께’와 ‘관찰’로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지오디는 같은 해 말에 출시한 2집의 연이은 히트를 통해 대중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두 번째 앨범에 실린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애수’, ‘Friday Night’가 2000년 지상파의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고 또 다른 수록곡 ‘그대 날 떠난 후로’도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게다가 이해 그룹이 출연한 MBC 예능 프로그램 [god의 육아일기] 또한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 가장 호감이 가는 국민 그룹으로까지 인식되기에 이른다. 아울러 이 해 연말에 선보인 3집도 발매와 동시에 히트함으로써 지오디는 완전한 대한민국 대표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999년 음반판매왕 조성모의 인기도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3집[Let Me Love]는 ‘아시나요’라는 메가톤급 히트곡을 터뜨리며 순식간에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고, 얼마안가 200만장을 넘어서는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 이 해 지오디[KBS가요대상]와 조성모[MBC 가수왕, 골든디스크상]는 연말 가요상  대상을 나눠가졌다.

서태지의 컴백도 매체와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었다. 1998년 첫 솔로 음반을 발표했을 때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았으나 두 번째 솔로 음반 [울트라맨이야]를 발표하면서는 4년 7개월여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태지는 앨범을 통해 당시 미국에서 인기를 얻던 장르인 뉴 메탈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최신 트렌드를 민첩하게 포착했다는 호의적인 평과 ‘장르 수입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몇몇 가수는 변신으로 주목받았다. ‘내 남은 사랑을 위해’로 미온적인 반응을 얻었던 홍경민이 당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던 라틴 팝과 리키 마틴을 벤치마킹해 록에서 댄스로 음악적 방향을 틀어 성공을 거두었다. ‘흔들린 우정’의 히트와 함께 그는 [한국의 리키 마틴]으로 불렸다. 한편, 청순한 이미지로 남성팬들의 사랑을 받던 박지윤은 섹스어필한 매력을 앞세운 ‘성인식’으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반면 디제이 디오씨는 5집 [The Life... DOC Blues]에서 언론과 경찰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등 훨씬 거칠어진 모습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 최대의 가요기획사가 된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소녀 가수 보아의 데뷔도 화제였다. 하지만 그녀는 국내에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 일본에 진출하며 한류의 주역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보아는 단순히 동양의 비슷한 감성에 호소하는 것을 넘어 가사와 음악 스타일을 현지화하는 전략으로 일본 시장에 안착했다.

인디 신은 펑크 밴드 노브레인의 데뷔 앨범 [청년폭도맹진가], 랩 록을 주 장르로 하는 퍼니 파우더의 데뷔 앨범 [The Greatest Hits], 한국 최초의 디제이 중심의 음반인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180g Beats] 등이 출시되며 꾸준히 장르의 다양화를 도모했다. 힙합 전문 레이블로 성장을 꾀하던 라이브 클럽 마스터플랜은 컴필레이션 음반 [MP Hip Hop 超]를 발표하며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저변을 확장했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해 ‘통일소녀’라는 예명을 쓴 길정화의 북한 가요 리메이크 앨범 [휘파람]이 출시돼 인기를 얻었다. 분단국가의 현실을 조명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 성공으로 영화에 삽입된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다시금 대중에 회자되기도 했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