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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1998. 아이돌 그룹의 득세와 조성모, 김현정의 등장

1998년은 IMF 경제위기의 한파로 사회 각 분야가 위축되었던 때이며, 특히, 음반업계는 전에 없는 불황에 빠졌던 때다. 정확한 집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무려 50%정도 음반 판매량이 급감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었다. 이렇듯 시장의 상황은 악화되었으나 가요계의 움직임은 여전히 역동적이었다.

H.OT와 젝스키스가 막강한 팬덤을 구축하며 라이벌 구도를 만든 것처럼 S.E.S와 이 해 5월 새롭게 등장한 핑클이 걸그룹 라이벌을 형성했다. S.E.S.는 1997년 11월 발표했던 1집 수록곡 ‘I'm Your Girl’과 ‘Oh, My Love’로 1998년 상반기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걸그룹이 되었으며, 핑클은 ‘Blue Rain’과 ‘루비(淚悲): 슬픈 눈물’로 남성 팬들을 사로잡았다. 여기에 SM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신화가 데뷔함으로써 아이돌 시장은 팽창을 거듭하게 된다. 아이돌 그룹들은 해외 진출도 모색했다. S.E.S가 일본, NRG가 중국, 클론이 대만에 진출해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

특히, 클론은 대만에서 60만장의 음반을 팔아치우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아이돌 그룹이 늘어나면서 각 팀의 구성원들이 증가하는 추세도 나타났다. 젝스키스를 비롯해 보이 밴드로는 신화, 원오원, 팬클럽 등이, 걸 그룹으로는 엘핀 러버스의 멤버가 6명으로 구성되었다. 또, 8명으로 이뤄진 O.P.P.A, 11인조 논스톱 등 많은 인원으로 이뤄진 그룹들이 계속해서 등장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이 많은 인원수로 관심을 받으려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많은 댄스 그룹이 출현하는 시장에서 서태지의 솔로 데뷔는 메가톤급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가요계 최대의 이슈를 제공했다. 그는 방송활동도 하지 않았으나 솔로 1집을 100만장 넘게 팔아치우는 괴력을 발휘해 과연 서태지라는 찬사를 받았다. [게다가 그의 음반은 6곡의 노래와 3곡의 간주곡이 담긴 28분짜리 미니 음반이었다.] 여자 가수 중에서는 김현정이 가장 빛났다. 1997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이 홍보 부족으로 이렇다 할 반응조차 얻지 못하고 묻혔으나 앨범 수록곡 중 ‘그녀와의 이별’이 뒤늦게 나이트클럽과 PC통신에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전국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그녀와의 이별’은 한국갤럽의 1998년 상반기 가요 선호도 조사에서 전체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다양한 팬층으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후속곡 ‘혼자한 사랑’도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으며 김현정은 연말에 열린 가요 시상식에서 수차례 신인상을 수상했다.

남자 신인가수로는 조성모가 돌풍을 일으켰다. 맑고 고운 음색에 뛰어난 가창력도 매력이었으나 드라마 방식으로 제작한 데뷔곡 ‘To Heaven’의 뮤직비디오가 많은 관심을 받아 더욱 유명해졌다. 이전까지 거의 모든 뮤직비디오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직접 출연했지만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연기자들만 나올 뿐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다른 가수들도 드라마 형식의 뮤직비디오를 많이 선보였으며 신비주의 전략도 홍보의 보편적인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해 10월 모습을 드러낸 조성모는 수려한 외모로 더욱 인기가 치솟았다. 급기야 그의 음반은 100만장을 훌쩍 넘겼고, 1999년에는 신승훈을 잇는 발라드의 황태자로 등극하게 된다. 조성모가 화제성이 높기는 했지만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도 일인자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6집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히트시키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조성모만 ‘얼굴 없는 가수’라는 호칭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조PD는 PC통신에 올린 ‘Break Free’로 얼굴 한 번 드러내지 않고 큰 인기를 얻었다. 정통 힙합 리듬과 욕설도 서슴지 않는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가사로 사이버 공간을 들끓게 한 그는 ‘컴퓨터 통신의 서태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사이버 문화의 확산에 따라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가 목격됐다. 사이버 가수 아담과 류시아가 데뷔했다. 이들은 초기에는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활동을 지속하지는 못했다. 유승준은 사이버 캐릭터를 연출해 비디오 CD [Back In Cyber]를 출시했으며 H.O.T.는 멤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사이버 H.O.T.]를 제작하기도 했다. 트로트와 성인 가요 쪽에서는 설운도, 송대관 등 중견 가수들이 건재했지만 1996년부터 ‘존재의 이유’로 스타덤에 오른 늦깍이 스타 김종환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누렸다. 그는 이 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 30대 이상의 국민이 뽑은 가수왕,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대상, 골든디스크상 대상 등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하며 1998년을 자신의 해로 만든 또 한 명의 톱스타가 되었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