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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1988. 가수들의 열띤 경쟁 속에 몰아친 세대교체의 바람

제 6공화국이 출범하고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이 해에는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사회 전체를 뒤덮던 때였다. 그리고, 새 정부와 올림픽 특수에 대한 기대가 넘치던 때였다. 이를 반영하듯 가요계에도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고, 새로운 가수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장을 지배한 건 기성 가수들이었다. 그 선봉에는 몇 년 째 음반 판매량 1위를 지킨 이문세와 전작 9집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조용필, 소녀팬을 몰고 다닌 여성 가수 이선희, 트로트 여왕으로 부상한 주현미, 가수로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도 능력을 보여준 전영록이 있었다. 먼저 이문세는 콤비 작곡가 이영훈과 한층 기품이 있으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명작[5집]을 발표했다. 발매도 되기 전 수십만장의 선주문으로도 화제를 모은 이 음반은 이 해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도합 258만장의 판매고 기록.] 하지만 발표 당시에는 다소 진통도 있었다. 당시 이문세의 소속사인 킹 레코드사가 느닷없이 음반 가격을 종래 3,300원에서 25%나 인상한 4,000원으로 올리면서 가요팬들의 분노를 자극했던 것. 그 여파로 일부 팬들과 소매상들의 불매운동까지 벌어졌으나 이마저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만큼 이문세 표 발라드는 아무도 거스를수 없는 대세였던 셈이다. 문제의 이문세 5집에는 저 유명한 ‘광화문 연가’를 비롯해 ‘붉은 노을’,‘시를 위한 시’,‘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같은 우리 가요의 클래식들이 포진해있다.  

한편, 전작의 부진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가왕 조용필은 미국과 일본, 한국을 오가며 음반 작업을 한 끝에 10집 음반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슈퍼스타다운 면모를 과시하며, ‘서울 서울 서울’과  ‘모나리자’를 히트시켰다.

그런가 하면 여자 가수 중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했던 이선희는 달달한 러브송 ‘나 항상 그대를’과 신중현의 명곡을 강렬하게 리메이크한 ‘아름다운 강산’으로 과연 여성 가수의 지존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반면 전영록은 ‘저녁놀’,‘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로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가 하면 가수 이지연에게 작곡해준 ‘그 후론’, 탤런트 김희애에게 작곡해준 ‘나를 잊지 말아요’등으로 인기 작곡가 반열에도 올랐다. 끝으로 주현미는 장조풍의 발랄한 노래 ‘신사동 그 사람’으로 트로트의 자존심을 세워주며 최고의 해를 보냈다. 급기야 그녀는 KBS 가요대상과 MBC 가수왕까지 거머쥐게 되면서 명실상부 최고의 트로트 가수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 외에 잔잔한 발라드로 여성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최성수,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환희’를 히트시킨 정수라, 가창력과 섹시미를 겸비한 민해경도 사랑받았다.

한편, 스타성을 갖추었거나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신인 가수들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숫적으로는 남자 신인 가수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했다. 하지만 시장을 뒤흔들 정도로 파괴력을 지녔던 가수는 이 해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차지했던 이상은이었다. 특히,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특유의 재미있는 안무는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화제성에서는 이상은에 뒤쳐졌으나 이 해 음악으로 가장 돋보였던 신인 가수는 단연 김종찬이었다. 그는 ‘사랑이 저만치 가네", "토요일은 밤이 좋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 해 여자 신인 가수상을 이상은이 휩쓴 것처럼 각종 남자 신인 가수상의 영광은 김종찬의 것이었다. 그 외 양수경, 변진섭, 박남정, 그룹 부활에서 솔로로 나선 이승철도 이 해에 등장한 무시못할 신인들로 향후 가요계의 주역들이 되었다.

올림픽으로 한반도가 후끈 달아올랐던 이 해. 그 최대 수혜자는 그룹 코리아나였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혼성 그룹 코리아나는 조르지오 모르더가 작곡한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로 모국에서도 순식간에 국민 그룹이 되었다. 여기에는 당시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거둔 성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우리나라 팀이 종합 4위라는 사상 초유의 성적을 거두면서 덩달아 ‘손에 손잡고’의 인기도 치솟았던 것이다. 결국 이 노래는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애창하는 국민가요가 되었다.

가요계의 손실도 있었다. 뛰어난 송라이팅 능력을 겸비한 가수 최병걸이 39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1970년대 중후반을 풍미했던 김인순과 ‘강병철과 삼태기’의 리더 강병철은 교통사고로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