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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1987. 싱어송 라이터들의 득세와 춘추 전국 시대

1987년은 오랜 민주화 운동이 결실을 맺은 해였다. 특히,  6월 민주항쟁 결과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헌법이 개정되었다. 또, 그에 따라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졌다. 민주화의 여파로 가요계에 반가운 일도 있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송창식의 ‘왜 불러’ 등 공연금지곡 186곡과 김민기의 ‘아침이슬’ 등 방송금지곡 500곡이 해금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정치, 사회적인 격변기였던 이 해에 가요계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만큼 절대 강자가 없었고, 여러 가수들이 군웅할거를 했다.

판을 주도했던 가수 조용필의 새 음반 [9집 사랑과 인생과 나]의 부진은 그 분수령이었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조용필의 신곡 중 ‘아하 그렇지’,‘청춘시대’,‘타인’등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가왕의 명성에는 큰 흠집이 남게된다.) 반면 전영록은 영화배우 활동과 가수 활동을 효과적으로 병행하면서 정상의 인기를 공고히 다졌고, 그결과 연말 KBS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안았다. 여자 가수로는 독보적이었던 이선희도 음악적 변신을 통해 한단계 업그레이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성인 취향의 애절한 발라드 ‘알고 싶어요’는 그녀를 단순한 10대의 우상이 아닌 국민 가수로 격상시켜주었다. 방송가와는 달리 음반가에서는 이문세가 일인자의 위치를 지켰다.

이 해 3월에 나온 4집은 전작보다 더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음반 시장을 지배했다.

타이틀 곡 ‘사랑이 지나가면’을 비롯해 수록된 아홉 곡 중 6곡 이상이 히트했고, 덕분에 음반은 시디 발매없이 LP와 카세트테이프로만 판매했음에도 285만장의 경이로운 음반 판매고를 올린다. 이는 조용필도 이루지 못한 꿈의 기록이었다. 한국형 팝 발라드의 이상향이 되어준 이문세의 음악은 이후 변진섭, 신승훈에 의해 계승되었다.

비록 LP보다는 카세트테이프의 판매가 주를 이루었으나 당시 19살 여고생이던 문희옥이 발표한 [사투리 디스코 메들리]가 36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덕분에 문희옥은 순식간에 가요계의 신데렐라가 되었으며, 트로트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도 기여하게 된다. 한편, 기성의 트로트 가수 중에서는 이른바 여성 트로트 3인방인 김수희, 심수봉, 주현미가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신인 가수들 중에서는 형제 포크 듀오 수와 진, 이 해 MBC 대학가요제 대상곡 ‘난 아직도 널’을 부른 작품하나, 데뷔 2년차의 이정석, 그룹에서 솔로 가수로 나선 조하문, 여고생 가수 이지연 등이 선풍을 일으켰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우리 가요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자 전설이 되는 가수 겸 작곡가 유재하가 데뷔 음반을 발표한 것도 이 해 8월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음악이 채 인정받기도 전인 11월 1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해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는데,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일들은 다 11월에 일어났다.  들국화의 전인권, 허성욱, 부활의 김태원, 가수 김현식 등이 대마초 상용 혐의로 구속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모두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던 때였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이 해 가장 큰 특징을 들라면 싱어송 라이터들의 도약과 활약이다. 장르를 떠나 작곡 능력과 가창 능력을 겸비한 가수들이 사랑받았다. 조용필, 전영록을 위시해  김범룡 이재성, 최성수, 김학래, 장덕, 조하문 등이 모두 싱어송 라이터들이었으며, 들국화, 벗님들, 다섯손가락, 시나위, 수와진 또한 멤버들이 송라이팅 능력을 갖추고 있는 팀이었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