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사 > 시대별 대중음악사

K-POP ARCHIVE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1985. 들국화, 한국 록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1980년 조용필이 ‘단발머리’로 가요의 팝 감각화에 새 장을 열었다면 1985년은 가요의 팝 감각화 혹은 서구화가 정착된 해다. 즉, 우리 가요의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에 비교해 손색이 없는 정도까지 올라섰다.  

그 중 조용필의 7집과 들국화의 1집,  다섯손가락의 1집, 이문세의 3집 등은 가요사에 길이남을 명반이 되었다.

이 해 가요계를 진두지휘한 사람은 역시 가왕 조용필이었다. 그는 자신의 곡보다 기성 작곡가들의 곡들로 채웠던 전작과는 확연히 달랐던 7집을 통해 상당히 파격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록사운드를 선사했다.

다분히 아트록 성향까지 담아낸 ‘어제 오늘 그리고’와 뉴웨이브와 하드 록이 감미로운 멜로디와 배합된 ‘그대여’가 가요 차트를 휩쓴데 이어 ‘미지의 세계’,‘여행을 떠나요’등도 인기를 누렸다. 게다가 일본 활동보다 국내 활동에 더 큰 비중을 두고 공을 들였으니 여타 가수들이 그 위세에 눌릴 정도였다. 결국 그는 양대 방송사 최고 인기 가수상을 다시한번 석권했다. 생애 마지막 천하통일의 순간이었다. 한편, 나미와 전영록, 정수라는 각각 감각적인 댄스 음악 [나미‘빙글 빙글’, 전영록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정수라‘도시의 거리’]으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1984년 송골매를 탈퇴해 충격을 주었던 구창모는 이 해 세미 트로트풍의 노래‘희나리’로 홀로서기에 성공했고, 김수희는 ‘고독한 연인’을 히트시키며 성인 가요의 자존심을 지켰다. 이 해 그녀는 일본 시장에도 진출한다. 1984년 돌풍의 주역 이선희도 ‘아, 옛날이여’ ‘갈등’, ,‘소녀의기도’,‘나는 사랑에 빠졌어요’등을 한꺼번에 히트시키며 최고의 여성 가수로 부상했다. 특히, 그녀는 폭넓은 계층으로부터 인기를 누리기도 했지만 여성들에게 더 큰 호감을 얻어 눈길을 끌었다. 신인 가수 중 1985년 가장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신인은 이미 1981년 듀오 빈수레의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한 바 있는 중고 신인 김범룡이었다. 그는 자작곡으로만 채워진 솔로 1집으로 가요계를 강타했는데, 여름에는 ‘바람 바람 바람’을, 겨울에는 ‘겨울비는 내리고’를 빅히트시켰다.

팀의 간판이었던 구창모의 탈퇴로 멘붕상태에 빠졌던 송골매도 저력을 발휘했다. 이들의 노래 ‘하늘나라 우리님이’는 [한국적인 록의 모범]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히트했다. 한편, 캠퍼스 밴드 다섯손가락의 부상도 눈에 띠었다. 이들은 이전에는 없었던 감각적이고도 세련된 발라드'새벽기차'와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로 주목받는 밴드가 되었고, 향후 한국의 대표 밴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9월 들국화의 데뷔는 한국 록음악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꾼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으며, 나아가 한국 록의 이상향을 보여준 쾌거가 되었다. 상업적인 홍보나 방송을 통해서 인기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들국화는 오직 음악만으로 가요계의 역사를 다시 썼다.

‘행진,’그것만이 내 세상‘ 두 곡만으로도 충분히 혁명적이었던 이들의 데뷔 음반은 건전 가요만 빼고 다 히트곡이고 문제작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들국화의 음악으로 시대의 아픔과 억눌림, 분노, 갈증을 해소했고, 기존의 주류 음악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음악적 희열을 느꼈다. 특히, 전인권이 구사한 마성의 보컬은 좌중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들국화는 단순히 인기만 얻은 게 아니다. 한국 가요의 토양을 비옥하게 했으며, 비주류 음악이 부각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가요의 르네상스기를 예고하는 희망의 전조나  다름없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쌍쌍 파티’라고 명명된 주현미, 김준규의 트로트 메들리 음반의 열풍이었다. Lp가 아닌 카세트테이프로 유통되었던 이 음반은 졸속 음반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시리즈로 제작되었는데, 1984년부터 돌풍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1985년에는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비공식 집계이지만 200만개 이상의 카세트 판매고을 올린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성과였다. 덕분에 메들리 열풍의 주역 중 한 명인 주현미는 본격적인 가수의 길로 접어들 수 있었고, 훗날 트로트계의 슈퍼스타로 성장하게 된다.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애절한 목소리의 가수 겸 작곡가 김정호가 11월 29일 김정호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사인은 폐결핵. 그 때 나이가 서른 셋. 너무나 이른 죽음이었고, 이는 우리 가요계의 큰 손실이었다. 한편, 후두암, 유방암으로 고생하던 가수 김수희가 이 해 10월부터 한달 간 필리핀에서 심령시술로 치료를 받고 완쾌되었다고 밝혀 장안의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