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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1984. 새로운 영웅 김수철, 이선희의 탄생

1983년 하반기부터 인기몰이를 했던 윤수일의 ‘아파트’가 1984년 연초 가요차트를 모조리 석권한 데이어 조용필의 ‘친구여’,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김수철의 ‘못다핀 꽃한송이’등 빅히트곡이 연달아 터지면서 가요계는 치열한 각축장이 되었다. 특히, 뛰어난 기타 실력과 작곡 능력을 겸비했던 김수철의 부상은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그룹 작은 거인을 이끌다가 솔로로 독립한 그는 사실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1집을 발표한 것이었다. 그러나, 1983년 하반기 불이 붙기 시작한 김수철 1집은 1984년에는 활활 타올랐던 것. 게다가 이 해 3월 31일 개봉한 배창호 감독 안성기, 이미숙 주연의 영화[고래사냥]에 주연급으로 출연하면서 그 인기가 더욱 치솟게 되었다.

이어 한국적인 락발라드 ‘내일‘과 한의 정서가 녹아있는 국악풍의 애절한 가요’별리‘가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10월에 나온 솔로 2집에서는 ‘나도야 간다’, ‘젊은 그대‘같은 노래가 나오자마자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기염을 토한다.

급기야 그는 이 해 KBS 가요 대상에서 조용필을 제치고, 최우수 남자 가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이는 1980년 이후 계속되어온 조용필 독주에 제동을 건 두 번 째 사례였다. [첫 번 째는 1982년의 이용] 그렇다고 해서 조용필이 추락했던 것은 아니다. ‘친구여’의 히트 이후 새롭게 내놓은 6집에서 ‘정의 마음’과 ‘눈물의 파티’가 히트했고, 팬들의 지지도 여전했던 것. 단지 그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전보다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첫째는 스캔들이다. 년초부터 8년간 사귄 박모씨와의 불화설, 유명배우 L씨와의 스캔들이 터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더니 갑작스럽게 3월 1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봉선사에서 박모씨와 전격 비밀 결혼을 올렸다. 양가의 가족 및 친구 10여 명만이 참석한 이 결혼은 여론을 잠재우기 보다는 또다른 억측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두 번 째 이유는 일본 시장에서의 인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때여서 일본 활동에 박차를 가했기 때문. 그는 7윌11일 일본의 고라꾸엔 야구장에서 열린 팩스 뮤지카에 참석한 데 이어 일본어 음반을 취입하고, 투어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렇게 1년 중 거의 반이상을 일본에서 보냈다. 그런 와중에도 MBC가수왕을 차지하는 등 톱스타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한편, 7월 29일 열린 제5회 강변가요제를 통해서 등장한 이선희는 대상곡 ‘J에게’로 이 해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원래 4막 5장이라는 혼성 듀엣의 일원으로 가요제에 참가했던 이선희는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팀의 대상을 이끌었었다. 가요제 후 발빠르게 솔로로 데뷔한 그녀는 결국 “J에게‘한 곡으로 MBC 10대 가수가요제의 3관왕[10대 가수상, 여자 신인 가수상, 최고 인기 가요상]이 된다. 남자 신인 중에서는 곱상한 외모에 독특한 창법이 인상적이었던 볼리비아 교포가수 임병수가 주목받았다. 특히 그의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은 염소 창법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이 해 남자 가수 중 윤수일의 활약도 눈부셨다. 년초 ‘아파트’의 열기를 하반기, 경쾌한 록 넘버 ‘아름다워’로 이어갔다. 그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시도한 바 없는 이른바 시티 록 음악으로 자기만의 아성을 구축했다. 여자 신인 가수 중에는 비록 이선희 돌풍으로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청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최혜영도 인기였다.  1월 1일 [젊음의 행진] 을 데뷔 무대로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그것은 인생’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만약 이선희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그녀의 신인가수상 수상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끝으로 1984년 가요계에서 표면적으로는 조망되지 않은 가장 큰 변화이자 특징은 가수들의 상향 평준화 현상이다. 즉, 전반적으로 가수들의 수준이 향상된 것이다. 예컨대 이전에는 누구도 조용필의 아성을 넘볼 수 없었다. 대중적인 인기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그랬다. 그만큼 조용필은 앞서있었다. 하지만 이 해를 기점으로 해서 조용필과는 또다른 개성과 음악성을 가진 가수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요계는 또다른 르네상스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