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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1982. 조용필, 이용, 나훈아의 정상 대결

1982년의 가요계는 여러 가지로 풍성했다. 조용필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가요계에 변화의 기운이 감지되었고, 나아가 그의 왕좌를 위협하는 가수들이 등장했다.

음악적으로도 다른 가수들의 성장이 눈에 띠었다. 1981년까지만 해도 조용필과 기존 가수들의 음악에는 분명한 음악적 수준차가 있었지만 1982년에는 그런 간극이 많이 해소되었다.

그룹 송골매는 그 대표적인 사례에 속하는 팀. 1981년 구창모의 가세로 더욱 강해진 이들은 1982년 새 해 벽두에 2집 음반을 발표했다. 송골매 전성기의 축포와 다름없었던 펑키 디스코와 뉴웨이브 사운드를 절묘하게 배합한 ‘어쩌다 마주친 그대’는 조용필의 ‘단발머리’에 버금가는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팬들은 열광했고, 송골매의 인기는 치솟았다. 후속곡인 묵직한 느낌의 록발라드 ‘모두 다 사랑하리’ 까지 히트하면서 이들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진다.

이윽고 이들은 같은 해 ‘회상’과 ‘내게 사랑은 너무 써’를 히트시킨 산울림을 밀어내고 밴드계의 일인자 자리에 우뚝섰다. 1981년 컴백을 선언했던 왕년의 슈퍼스타 나훈아도 1982년에는 완전히 재기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197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그와 1980년대 최고의 스타 조용필 간의 자존심 대결은 팬들의 큰 관심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간의 대결은 조용필의 완승으로 끝난다.

 조용필은 이 해 5월에 내놓은 4집으로 다시한번 슈퍼스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의 신곡들은 다른 가수들의 노래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히트했고, 8월에는 자신의 노래로 가요 차트를 모조리 석권했다.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새 음반에서도 ‘못찾겠다 꾀꼬리’, ‘비련’,‘꽃바람’,‘자존심’ 등 여러 곡이 동반히트했다. 그 중 ‘못찾겠다 꾀꼬리’는 [가요 톱 10]에서 10주 연속 1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1위곡의 기간을 5주로 한정짓는 골든컵 제도가 만들어졌다. 어쨌든 조용필은 레코드 판매량과 방송 횟수, 히트곡 수에서 나훈아뿐만 아니라 여타 가수들을 압도했다.

당연히 연말 가요상도 그가 독식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조용필의 독주에 제동이 걸리는 이변이 발생했다. 아직 신인티를 벗지 못한 가수 이용이 ‘잊혀진 계절’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과 최고 인기 가요상을 모두 가져가게 된 것이다.

물론 KBS에서는 조용필이 왕관을 차지했지만 이용의 가수왕 등극은 당시로서는 선세이션한 결과였다. 이용은 조용필의 라이벌로 부각되었고, 그를 따르는 10대팬들도 구름처럼 늘어났다.

또한, 중장년층의 인기도 얻었다. 한편, 나훈아처럼 뜨거운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20년 경력의 중견 가수 하춘화의 재기도 눈길을 끌었다.

이 해 봄 그녀는 ‘사랑했는데’를 각종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옛 명성을 되찾았다. 1980년대 초반 꾸준한 인기를 모은 혜은이, 윤시내, 현숙, 이은하, 민해경 등 여자 가수들의 활동도 여전했다.

1970년대 후반 가수왕 2연패의 주인공 혜은이는 성인 취향의 애잔한 발라드 ‘잊게해주세요’로 건재를 과시했고, 윤시내는 하반기 ‘DJ에게’로 인기 차트를 석권했다. 현숙은 ‘포장마차’로, 이은하는 ‘네가 좋아’로 인기를 이어갔고, 민해경은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정상의 여자 가수로 인정받는다.

이들 외에 남궁옥분이 1981년 내놓은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로 1982년 10대 가수의 반열에 올랐고, 1977년 미스코리아 진 출신의 가수 김성희도 미스코리아 특수를 누리며 남성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의 상큼한 매력이 잘 녹아든 노래‘매력’도 인기를 누리면서 이 해 MBC 10대가수 가요제 여자 신인 가수상을 수상했다. CF모델 출신의 신인 여가수 임수정의 인기도 폭발적이었다

 TV 드라마[아내]에 삽입되면서 가을부터 인기를 모은 그녀의 데뷔곡 ‘연인들의 이야기’는 1982년은 물론 1983년 상반기까지 인기를 누렸고, 그 여파로 임수정의 데뷔 음반도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밴드의 멤버에서 솔로로 전향한 이명훈도 여성팬들의 지지를 받았. 깜찍하고 발랄한 댄스 곡‘얼굴 빨개졌다네’의 히트와 이미 그룹 시절 쌓은 인기와 인지도가 플러스되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그의 성공은 이후 밴드 보컬리스트들을 고무시켰고, 그들의 홀로서기에 본보기가 되어주었다. 가수보다는 만능 엔터테이너로서의 개인적인 인기에 의존했던 전영록이 비로서 가수로서의 존재감을 보인 것도 이 해였다.

그는 ‘종이학’으로 가수로서의 전성기를 열었고, 이후 진정한 하이틴 스타로 군림하는 동시 정상의 가수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느새 10대팬들 사이에서 조용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르게 된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