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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1981. 난공불락의 조용필 천하

1980년의 조용필 신드롬은 이듬해인 1981년까지 이어졌다. 1980년 9월부터 12월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정윤희, 한진희 주연의 KBS TV 주말 드라마 [축복]의 주제가‘촛불’이 연초부터 각종 가요 차트를 휩쓸었다. 특히, 이 곡은 1980,90년대 가장 영향력있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으로 군림했던 KBS TV [가요 톱 10]의 첫 회 1위곡이었으며, 이후 7주 동안 정상을 차지했다.

이어 7월에 발매된 조용필 3집은 순식간에 50만장을 팔아치우면서 ‘미워 미워 미워’,‘고추잠자리’,‘여와남’,‘물망초’,‘일편단심 민들레야’등을 연달아 히트시킨다. 3집은 가히 [히트곡의 보고]라고 할만 했다. 이 중 ‘고추잠자리’는 남녀노소 누구나가 따라불렀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결과 KBS 라디오 가요 차트에서 무려 24주간이나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그런데, 정작 KBS TV의 [가요 톱 10]에서는 1위에 오르지 못해 공정성 시비를 불러일으키며, 상당한 논란을 낳았다. 조용필 3집은 음악적으로도 한국 가요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역작이었다. ‘고추잠자리’나 ‘여와 남’같이 창의적이고 진일보한 구성의 가요는 향후 우리 가요의 새로운 지평이 되어준다. 한편, 1970년대를 대표했던 중견 가수들의 인기도 되살아났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정상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기도 했던 이은하와 혜은이가 나란히 [이은하 ‘한순간’, 혜은이 ‘옛사랑의 돌담길']히트곡을 터뜨리며 과거의 명성을 되찾았다. 또, 밴드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트로트 고고 스타일의 노래를 불렀던 세 명의 남자 가수, 함중아와 윤수일, 김만수도 정상의 인기를 누렸다.

먼저 1970년대 후반의 트렌드였던 트로트 고고 사운드를 계승한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와 김만수의 ‘그 사람’은 가요 톱 10에서 각각 5주와 4주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반면 윤수일은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면서 과감한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본령인 록으로 돌아가 개성있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가 윤수일 밴드의  이름으로 내놓은 두 번 째 음반은 선풍을 일으켰고, 전형적인 시티 록 넘버‘제2의 고향’는 차트 정상에 오르는 등 크게 히트했다. 이 해 정통 그룹들의 약진도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산울림의 성공적인 재기다. 1977년 ‘아니벌써’로 한국 록밴드의 간판 그룹으로 부상한 산울림은 1978년 이후 세 멤버 중 두 명[김창훈, 김창익]이 입대를 하면서 제대로 된 활동을 펼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이 해 7월 제대하면서 다시 하나가 된 이들은 곧바로 신보 작업에 들어가 한달 만인 8월에 새 음반이자 통산 7번 째 음반을 내놓았다.

이 음반은 산울림의 인기를 다시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이 음반에서는 ‘가지마오’,‘청춘’,‘독백’,‘하얀달’등 네 곡이 무더기로 히트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 연말 KBS 가요대상에서 그룹사운드 부문의 수상자가 되었다. 밴드 마그마의 1집 발매도 화제였다. 1980년 제 4회 대학가요제에서 '해야'로 은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던 마그마는 향후 한국의 록음악계를 이끌어나갈 가장 강력한 후보였다. 이 팀에는 조하문이라는 작곡 능력을 갖춘 걸출한 보컬리스트가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단 한 장의 음반만 발표하고는 단명하고 말았다. 여성 가수 중에서는 수연과 이정희의 활약도 돋보였다. 수연은 봄에는 ‘첫 사랑’을, 가을에는 ‘높은 하늘아’를 [가요 톱 10] 정상에 올려놓는 기염을 토했다. 더욱이 ‘높은 하늘아’의 경우 가요 톱 10에서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제치고 정상을 차지했었기 때문에 더 큰 관심을 모았다.

한편, 데뷔 3년차의 여성 가수 이정희도 ‘그대여’ 한 곡으로 1981년의 신데렐라가 되었다. 그녀는 연말 KBS 가요 대상에서도 윤시내, 이은하, 현숙, 혜은이 등을 물리치고, 여자가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81년이 배출한 신인 가수로는 이용과 민해경, 정재은, 남성 듀오 유심초가 있다. 그 중 국풍81에서 ‘바람이려오’로 금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용은 데뷔 첫 해 10대 가수에 선정될 정도로 주목받는 신인이었다. 또, ‘항구’로 트로트의 신데렐라가 된 정재은의 경우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딸이었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 1980년대. 그러니까 1987년 조용필이 불참을 선언하기 전까지 가요팬들은 물론이고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연말의 양대 방송사[MBC 10대 가수 가요제, KBS 가요대상]의 가요상 시상이었다. 이 해 12월의 마지막 이틀 동안 조용필은 다시한번 양방송사의 최고 가수상을 독식했다. 가수왕, 최고의 남자 가수라는 타이틀 외에도 최고의 인기 가요[고추잠자리] 타이틀도 그의 몫이었다. 1981년 누구도 조용필의 아성을 깰 수 없었다. 그렇게 조용필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