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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Year 1980. 조용필 독주 시대 개막

1980년은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의 시기였다.

1979년 12월 26일 대통령 시해라는 초유의 사태로 대한민국은 멘붕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혼란이 가속화되었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맞이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민주화의 봄을 기대하게 했지만 한편으로 상당한 우려를 자아내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그 때 불행하게도 역사를 기만하는 군사 쿠데타가 다시한번 일어났고, 결국 이 땅의 군사 독재는 연장되었다.

그 여파로 문화 예술계에도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검열의 시대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가요시장은 활기를 띠었으며 나아가 이제껏 한번도 출현한 적이 없는 진정한 영웅을 탄생시켰다. 그는 다름아닌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가왕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가수 조용필이다.

조용필의 등장은 우리 가요 황금기의 시작이었고, 다시는 재현하기 힘든 찬란한 역사의 출발이었다. 예컨대 한국의 음반 시장에서 가요가 서구의 대중음악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가요가 점차 세계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것이 한류로 이어지게 된 것도] 조용필의 공로가 크다.

이미 1977년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한차례 선풍을 일으켰고, 대마초 파문으로 나락에 빠졌었던 그가 1980년대 자신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1979년 12월 6일 4공화국의 말기에 정부가 발표한 전향적인 조치가 전환점이 되었다.

바로 1975년부터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마초 파문 관련 연예인들에 대한 해금 조치였다. 이로써 대마초 파문 이후 뒷걸음치던 우리 가요계는 오래만에 활동 동력을 얻게 되었다.

몇 년간 묻혀있던 가요계의 거물들이 다시 재기할 태세를 갖추었고, 그렇게 분주한 움직임속에서 1980년을 맞았던 것이다. 게 중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 신중현을 위시한 그의 사단 가수들과 윤형주, 김세환, 김정호, 임창제, 하남석 등 일련의 포크 가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조용필이 있었다.

10년간의 밴드 활동으로 음악적 기초를 탄탄히 했던 조용필은 활동 중지에 묶여있는 동안 자신의 창법을 연마하고, 새로운 음악들을 두루 섭렵했다.

록을 본령으로 판소리, 민요, 발라드, 디스코, 소울, 블루스 등 서로 대척점에 있는 음악들을 받아들였고, 자신의 음악안에 녹여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통합시키는 성과를 이룩했다. 아울러 각고의 노력 끝에 판소리 창법을 터득하면서 진성과 탁성, 가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이른바 조용필 창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무대에 목말라하던 그는 당시 메이저 음반사였던 지구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TBC 동아방송의 라디오 연속극[창밖의 여자]를 부르면서 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런데, 이 때 맺은 지구레코드와의 불공정 계약은 두고두고 그에게는 아킬레스건이 되었고, 결국 지금까지도 불이익을 당하는 단초가 된다. 

이 해 3월 20일 발매된 조용필의 재기 후 첫 음반이자 통상 1집으로 분류되는 음반[조용필, 창밖의 여자/단발머리]는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가요 사상 최초로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가요계를 휩쓸었다.

새미 트로트풍의 애절한 발라드 ‘창밖의 여자’와 뉴웨이브와 디스코, 락이 접목된 ‘단발머리’가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이전에 발표했었던 ‘정’, ‘너무 짧아요“같은 노래들도 재조명받았다. 게다가 민요 ‘한 오백년’마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가수 최백호가 회상했듯 당시 조용필의 음악은 감당하기 어려운, 차원이 다른 메가톤급 충격이었다.

특히, ‘단발머리’의 히트는 공교롭게도 1977년 자신이 불렀던‘돌아와요 부산항’이후 가요계의 주류가 되다시피한 고고풍의 트로트 음악을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어버렸다. 이렇듯 조용필은 타성에 젖어있는 가요계에 큰 자극이 되었고, 우리 가요가 가야할 방향의 중심축이 되었다.

비록 조용필의 위세에 눌리기는 했지만 기존의 인기 가수들, 송창식, 박경애, 윤수일, 윤시내, 전영록, 이은하, 현숙, 최헌, 혜은이 등도 히트곡을 터뜨렸다. 또, 혼성 듀엣 물레방아 출신의 싱어송 라이터 백영규도 감성적이고 우수어린 ‘슬픈 계절에 만나요’로 여심을 뒤흔들어놓았다. ‘슬픈 계절에 만나요’는 이듬해 영화화되기도 했는데, 당대의 톱스타 장미희와 백영규가 직접 공연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

한편, 대마초 파동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5년간 절치부심했던 신중현도 [신중현과 뮤직파워]라는 혼성 9인조 그룹으로 컴백했다. 그는 이미 1972년 [신중현과 더 맨]의 이름으로 발표했던 ‘아름다운 강산’을 새로운 감각으로 편곡해 불러 재기에 성공했고, 한국 락의 대부로서의 자존심을 되찾았다.

하지만 누가뭐라고 해도 1980년은 조용필로 시작해 조용필로 끝난, 조용필의 해였다. 정치적 격변의 소용돌이도 그의 인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 해의 양대 방송사 최고 인기가수상을 비롯해 모든 상은 그의 차지였다. 그리고, 1집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인 12월 5일 카네기홀 공연을 기념하면서 발매한 2집[祝福(촛불)]은 조용필 독주 시대를 확실하게 인증시켜준 일종의 인증샷이었다. 

평론가, 프로필
평론가 프로필
이헌석

현 음악평론가 및 영화음악감독

한국 예술문화치유협회 예술 영재사업단 선정위원장

코리안 페스티벌 자문위원

고영탁

현 음악평론가

대중음악 웹진 이즘(IZM)의 필자, 팝 매거진 [오이뮤직] 기자

한동윤

현 음악 평론가.

네이버 뮤직, 웹진 이즘(IZM)의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