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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 대중음악사

1990년대

1990

발라드.트로트.댄스 3강 체제

발라드와 트로트, 댄스 세 양식이 두루 인기를 얻으며 발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그 중에서도 변진섭, 이승환을 필두로 한 발라드가 가요계 흐름을 이끌었다. 트로트 또한 주현미, 현철, 태진아 등의 활약으로 강세를 이어갔으며, 댄스음악 부문에서는 김완선이 모든 공중파 TV와 라디오를 평정했다. 그리고 연말에는 신승훈이 역사적인 데뷔를 하면서 1990년대 ‘발라드 황제’ 시대를 예고했다.

1991

용호상박의 경쟁

1990년 말 데뷔한 신승훈이 발라드 곡 ‘미소속에 비친 그대’와 ‘날 울리지마’로 가요계를 이끌었고, ‘거울도 안보는 여자’, ‘미안 미안해’의 태진아와 ‘당신’을 부른 김정수가 트로트 흥행을 이어갔다. 또 그룹 공일오비와 이상우, 노사연, 이범학, 심신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1992

서태지와 아이들의 신드롬

‘신세대’라는 단어가 첫 등장한 해였다. 무엇보다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이 ‘난 알아요’로 데뷔해 가요판을 뒤흔들며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알린 한 해였다. 또한 그들이 내세웠던 랩 댄스 음악은 단숨에 한국 가요계 주류로 부상했다. 그해 겨울에는 김건모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로 데뷔했으며,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김건모 등이 ‘빅3’체제를 구축해 치열한 경쟁구도를 그려내면서 1990년대 한국 가요의 황금기를 견인했다.

1993

랩 댄스와 X세대, 가요계 중심에 서다

문민정부가 시작된 1993년, 가요계는 거대한 국면 전환을 맞이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노이즈, 잼 같은 댄스 그룹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추세는 10대 취향의 랩 댄스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었다. 여기에 랩 댄스 열풍의 주역 서태지와 아이들이 2집을 공개하고 힙합 그룹 듀스까지 가세해 댄스뮤직은 가요계를 완전히 장악했다. 또 ‘X세대의 아이콘’ 김원준, ‘한국의 스티비 원더’ 김건모가 스타로 떠오르는 등 1990년대 가요계의 전성기가 무르익어 가던 한 해였다.

1994

김건모의 레게 열풍과 가요계의 황금기

김건모,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투투, 박진영 등 여러 다양한 가수들이 뛰어난 활약을 펼쳐 가히 가요계의 황금기였다. 그 중에서도 김건모는 레게 곡 ‘핑계’로 가요계를 휩쓸며 1994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또 서태지와 아이들은 뜻밖에도 남북한의 통일을 염원하는 3집을 출시했고, 듀스는 여름 노래의 대명사가 된 최대 히트곡 ‘여름 안에서’를 발표했다. 그밖에도 영화 [건축학개론](2012)을 통해 다시금 주목받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비롯해,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 이상우의 ‘비창’,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 같은 명곡들이 이때 대거 탄생했다.

1995

댄스, 댄스, 댄스

전년도에 이어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가 계속됐다. 가요계의 추세는 댄스음악으로 완전히 돌아서서 김건모, 박미경, 듀스, 룰라, 박진영, 알이에프, 노이즈, 디제이 디오씨로 이어지는 댄스음악 라인이 가요계를 지배했다. 특히 김건모는 트랜스 댄스곡 ‘잘못된 만남’으로 한반도를 발칵 뒤집어놓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1996

H.O.T.의 데뷔와 음반 사전심의 폐지

철저한 기획에 의해 탄생한 아이돌 그룹 H.O.T.가 데뷔함으로써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를 열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음악인들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았던 음반 사전심의가 폐지됨으로써 가수들의 표현의 폭이 확대되고 대중음악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997

댄스음악, 록, 힙합의 균형있는 성장

수많은 댄스 그룹의 등장으로 댄스음악의 득세가 이어졌으나 시나위, 넥스트, 김종서 등 베테랑 록 뮤지션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시장의 균형을 맞춰 갔다. 언더그라운드에서도 개성 강한 록 밴드들이 출현함으로써 록의 토양은 더욱 비옥해졌다. 힙합 뮤지션들도 주목할만한 작품들을 내놓음으로써 국내 힙합 신은 점차 상승세를 타게 된다.

1998

아이돌 그룹의 득세와 조성모, 김현정의 등장

아이돌 그룹들이 댄스음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김현정이 ‘그녀와의 이별’로 상반기에 큰 인기를 얻었다. 하반기에는 ‘얼굴 없는 가수’로 일컬어진 조성모가 ‘To Heaven’으로 발라드 돌풍을 일으켰다. 성인 가요쪽에서는 김종환이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가상의 가수가 등장하는 등 사이버 문화는 가요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9

아이돌의 해! 힙합의 해! 조성모의 해!

H.O.T 대 젝스키스, S.E.S 대 핑클의 경쟁이 점입가경을 이루는 가운데 아이돌 가수들이 여전히 가요시장을 주름잡았다. 그러나, 이 해 최고의 흥행수표는 조성모였다. 그는 1집, 2집 음반으로 도합 300만장이 넘는 천문학적인 음반판매고를 올렸다. 한편, 조PD의 파격적인 출현과 많은 힙합 뮤지션의 등장으로 힙합은 점차 대중음악의 인기 장르가 되어 갔다. 대규모 록페스티벌의 개최, 라이브 클럽에서의 공연 합법화는 공연 문화의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